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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

[뉴스 단독 취재] '바바 초이' 선교사, 탄자니아 선교 현장서 상습 성범죄… 대법원 실형 확정

by 브레드79 2025. 11. 29.

최재선 선교사 전화번호를 'daddy'라고 저장한 A. 시간이 지나고 이름은 '살인자', '최재선'이라고 바뀌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출처 : 뉴스앤조이(https://www.newsnjoy.or.kr)

앵커: 안녕하십니까. 2016년 말, 한국 교계는 탄자니아에서 활동하던 한 중년 선교사의 추문으로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바바 초이'라 불리며 존경받던 최재선 선교사가 선교의 탈을 쓰고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으며, 한국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뉴스 취재팀이 사건의 전말을 단독 보도합니다.


[현장 취재] '아프리카의 아버지' 최재선 선교사, 신뢰를 저버리다

기자: 최재선 선교사는 1980년대부터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해 온 인물입니다. 탄자니아 북부 아루샤 지역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으로 명망을 쌓았으며, 2015년에는 빈곤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뉴비전스쿨'을 개척하며 한국 교회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현지인들에게는 '바바 초이'(Baba Choi)라 불리며 존경받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 그 해 선교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 노(老)선교사의 거짓된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황무지를 옥토로 바꾼" 경건한 선교자 같았지만, 실상은 선교의 탈을 쓰고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였다는 것이 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사건 재구성] '아빠'라 불렀던 신뢰, 악몽으로 변하다

기자: 사건의 발단은 2015년 10월 탄자니아 아루샤의 선교캠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최재선 선교사가 이끄는 현지 캠프에는 당시 20대 한국인 여성 A씨가 1년 일정의 자원봉사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A씨는 가족 같은 공동체 분위기 속에서 60대인 최 선교사를 "아빠"라 부르며 따를 정도로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뢰 관계는 선교사의 일탈로 인해 무참히 깨지게 됩니다.

2015년 10월 24일 밤, 최재선 선교사는 감기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A씨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습니다. 아무 의심 없이 방에 들어선 A씨에게 그는 돌연 입을 맞추고 몸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A씨가 완강히 저항하자 그날은 미수에 그쳤으나, 이는 악몽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하루 뒤, 최 선교사는 잠겨 있던 A씨의 방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와 "꿈속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자기 죄를 씻어주셨다"며 A씨에게 용서를 구하는 황당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발언 직후, 회개는커녕 그는 끝내 A씨를 강제로 성폭행했습니다. 그날 이후 약 두 달간, 최 선교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A씨의 방에 찾아와 수없이 성폭행을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상습적 범행이었다는 것이 법원 판단입니다.


[가해자의 망언] "내 아내는 레아, 너는 라헬"… 드러난 상습적 면모

기자: 가해자인 최재선 선교사는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를 기괴한 방식으로 합리화했습니다. 성폭행을 당하는 내내 A씨는 최 선교사로부터 귀를 의심케 하는 망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최 선교사는 "아내와의 성관계는 만족스럽지 않은데 너한테는 만족을 느낀다", "내 아내는 레아이고 너는 라헬이다", "아내가 죽으면 너를 아내로 삼겠다"와 같은 말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나는 음란물을 즐겨 본다", "50대 때 집 청소를 하러 온 현지 여성 2명을 성추행한 적도 있다"고 자랑하듯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그의 범행이 즉흥적인 일탈이 아닌, 오래전부터 유사한 행위를 저질러온 상습적 성범죄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피해자의 고통] "살인자"로 변한 '아빠'… 지속된 영적 가스라이팅

기자: 한때 해외 선교의 꿈을 품고 아프리카까지 갔던 20대 청년 A씨에게, 이 사건은 치유하기 힘든 심리적 상흔을 남겼습니다. 선교지에서 존경하던 '영적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충격으로, A씨의 신앙과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범죄 직후 A씨는 휴대폰에 'Daddy'라고 저장해 두었던 최재선 선교사의 연락처 이름을 "살인자, 최재선"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는 A씨에게 그 "아빠"가 영혼을 죽인 가해자나 다름없었다는 심경을 보여줍니다.

A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가해자의 폭력은 교묘한 형태로 계속되었습니다. 최 선교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자신을 여전히 "아빠"로 지칭하며, A씨에게 성경 구절을 읽어주거나 그녀를 위한 기도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이는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영적 가스라이팅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보려는 시도였으며, A씨에게는 2차 가해나 다름없는 행위였습니다.


[법정 공방과 판결] 대법원 징역 1년 실형 확정… "다른 피해자 위해 싸웠다"

기자: 결국 A씨는 용기를 내어 한국에서 법적 대응을 결심했습니다. 그녀의 고발로 수사가 이루어졌고, 최재선 선교사는 귀국 후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수년에 걸친 긴 법정 공방 끝에 한국 대법원은 최재선 선교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의 실형을 확정지었습니다(주거침입 강제추행죄 적용). 1심 판결 이후 법정 구속되었던 그는 대법원 결정으로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에서 복역했습니다.

비록 피해자의 고통과 상습적인 범행에 비해 형량은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피해자가 수 년에 걸친 지리한 싸움 끝에 가해자의 죄를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의미 있는 결과였습니다. A씨는 판결 소식을 접하며 "어딘가 존재할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는 전언입니다.

앵커: 존경과 신뢰를 등에 업고 벌어진 성직자의 범죄는 종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종교 공동체 내부의 윤리 의식과 자정 노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뉴스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