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페루의 가톨릭 평신도 단체 '소달리티움 크리스티아나에 비타에', 약칭 SCV가 최근 교황청에 의해 이례적으로 해산 명령을 받았습니다. 한때 가톨릭 사도생활단으로 인정받았던 이 단체가 성범죄와 권력 남용, 재정 비리 등 총체적인 추문으로 사실상 '퇴출'된 것인데요.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신앙의 이름 아래 오랜 기간 저질러진 조직적 범죄에 대한 교황청의 단죄로 해석됩니다. 겉으로는 신실한 신앙 공동체였던 SCV 내부에서 어떻게 이러한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김민지 기자가 심층 보도합니다.
리포트:
페루의 가톨릭 평신도 단체 Sodalitium Christianae Vitae(SCV)가 최근 교황청에 의해 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가톨릭 사도생활단으로까지 인준받으며 성장했던 이 단체가 성범죄, 권력 남용, 재정 비리 등 광범위한 추문으로 인해 사실상 '퇴출'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해산 조치는 단순한 일탈을 넘어, 신앙의 이름 아래 오랜 기간 자행된 조직적 범죄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단호한 단죄라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창립자 피가리와 SCV, 감춰진 범죄의 실체: SCV의 창립자인 루이스 페르난도 피가리(Luis Fernando Figari)는 1971년 페루 리마에서 단체를 설립하였고,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공식 인준을 받으며 교계 내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한때 남미와 미국에 약 2만 명의 회원을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던 SCV는 겉으로는 열성적인 복음화 운동으로 각광받았으며, 특히 페루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가톨릭 영성 수호를 표방했던 이 단체 내부에는 어둡고 은밀한 실상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창립자 피가리는 단원들에게 절대적인 영적 지도자로 군림하며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했고, 자신을 일종의 '구루'(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을 뜻함)처럼 받들게 만들었습니다. 한 내부고발자는 SCV를 가리켜 "오로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완전히 전체주의적인 종교 조직"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제로 피가리는 파시즘적 사상에 심취하여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연설을 찬미하고, 나치 청소년단을 모방한 규율을 도입하는 등 단체를 준군사조직처럼 운영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신앙의 외피 아래 조직은 병적으로 경직되었고, 교주적 카리스마를 앞세운 피가리의 절대권력이 그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성범죄와 폭력이 구조적으로 자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충격적인 성범죄와 학대 증언: 2015년, SCV 전 회원인 페드로 살리나스와 기자 파올라 우가스가 공저한 책 «반은 수도자, 반은 군인»을 통해 드러난 증언들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창립자 피가리는 어린 신입 단원들을 자신의 권위에 복종시킨다는 명목으로 가학적 성폭력과 심리적 학대를 일삼았으며, 그의 측근 고위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로 폭력과 학대를 저지른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SCV가 2017년 자체 실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피가리와 몇몇 전직 간부들이 최소 19명의 미성년자와 10명의 성인에게 성적 및 심리적 학대를 가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추가 제보가 이어지면서 피해자는 60명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피해자들 중에는 단체에 투신한 십대 소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가해자가 피가리 본인이 아닌 "영적 지도자"로 위장한 다른 간부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피해자는 자신이 14세 때 믿고 따르던 지도 신부에게 2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했으며, 가해자는 이를 영적 지도로 포장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는 신앙과 순종을 악용한 전형적인 범죄 행태였습니다.
심리적 폭력과 경제적 비리까지: SCV의 폭력은 비단 성범죄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피가리는 신도들에게 모욕적이고 가혹한 훈련을 가하며 심각한 심리적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단원들은 영적 수련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적 존엄성이 철저히 무시된 채 생활하도록 강요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폭언, 강압, 심지어 구타와 굴욕적인 처벌까지 행해졌다는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이는 종교적 헌신이 아닌 인권 유린에 가까운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SCV 수뇌부는 경제적 비리와 부패에도 깊숙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단체 헌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재정을 불투명하게 운용한 사실이 드러났고, 심지어 일부 간부들은 교회의 명성을 등에 업고 토지 투기와 사업 이권을 쫓는 데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SCV 소속 인사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이 페루 피우라 지역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허위 고소와 폭력까지 동원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종교 단체의 외피 뒤에서, 신앙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세속적 탐욕과 권력 남용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앵커 멘트: 페루의 가톨릭 평신도 단체 '소달리티움 크리스티아나에 비타에', SCV가 교황청에 의해 해산되는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성범죄와 권력 남용, 재정 비리 등 총체적 추문으로 얼룩졌던 이 단체는 결국 '퇴출'이라는 단죄를 받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리가 25년간 묵인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왜 피해자들의 외침은 그토록 오랫동안 외면되었고, 바티칸의 책임 추궁은 왜 지연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전말과 교훈을 심층 보도합니다.
리포트:
페루의 가톨릭 평신도 단체 Sodalitium Christianae Vitae (SCV)의 해산은 오랜 기간 감춰졌던 비극의 종착점이었습니다. 창립자 루이스 페르난도 피가리의 성범죄를 비롯해 권력 남용, 재정 비리 등으로 얼룩졌던 이 단체는 결국 교황청에 의해 완전히 해산되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바티칸의 뒤늦은 조사와 단호한 해산 결정: SCV 내부의 비리 의혹은 일찍이 제기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단체의 일탈 징후가 포착되었고, 2011년에는 전직 단원들이 피가리의 학대 행위를 리마 대교구에 공식적으로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현지 교회와 바티칸은 오랫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교계 권위에 순응하는 분위기 속에서 초기 고발들은 묵살되거나 흐지부지되었고, 창립자 피가리는 수년간 사실상 성역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15년, 피해자 페드로 살리나스와 기자 파올라 우가스가 공저한 책 «반은 수도자, 반은 군인»을 통해 비리 실체가 세상에 폭로되면서였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그제야 SCV는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2017년 충격적인 조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고서에는 피가리와 몇몇 전직 간부들이 최소 19명의 미성년자와 10명의 성인에게 성적 및 심리적 학대를 가한 사실이 담겼으며, 추가 제보로 피해자가 60명 이상이라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이 조사 결과를 접한 바티칸은 뒤늦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교황청은 미국의 조셉 토빈 대주교를 임시 책임자로 파견해 SCV의 개혁을 감독하도록 했고, 2018년에는 콜롬비아의 노엘 로도뇨 주교를 조직 위원장(커미사리)으로 임명하여 내부 정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뿌리 깊은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재정 비리 의혹 등이 불거지며 개혁 노력은 난항을 겪었습니다.
2023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침내 조사관 두 명, 즉 교회 성학대 조사 전문가로 알려진 말타의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와 호르디 베르토메우 신부를 페루에 파견하여 SCV에 대한 전면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이들은 현지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조직 운영 실태를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보고서는 SCV가 "사이비 종교 집단에 가까운 가학적 권위 남용과 영적 학대", 그리고 지도부의 재정 불투명과 부패가 만연해 있었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비판적 언론인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조직적 괴롭힘과 압력이 자행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실태를 접한 교황은 더 이상의 부분 개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2024년에 이르러 피가리와 핵심 책임자 10여 명이 SCV에서 전격 축출되는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그 중에는 앞서 SCV 비리를 고발한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진실을 덮으려 했던 페루의 한 대주교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사건 초기 피가리를 비호한 인물로 지목되었다가 결국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과 비판 여론은 조직의 완전한 해체를 요구했고, 마침내 교황청도 이에 응답했습니다.
2025년 1월 20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SCV에 대한 교황령 해산을 공식 승인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극도로 이례적인 결정으로, 교황이 추문에 휩싸인 가톨릭 단체를 아예 해산시킨 사례는 거의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과거 멕시코의 레지오 수도회 등 유사하게 창립자가 대규모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들이 있었으나,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조직을 없애지 않고 개혁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그에 비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SCV의 경우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하다고 판단, 단체를 완전히 해산하는 단호함을 보인 것입니다. SCV 본부 역시 해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지만, 해산 소식이 알려진 내부 총회에서 정보 유출자를 색출해 제명하는 등 끝까지 구태를 보이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첫 고발이 나온 지 25년 만의 일로, 피해자들은 "너무 늦었지만 결국 정의가 실행됐다"고 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수십 년간 묵살된 피해자들의 외침: 침묵의 카르텔: SCV 사건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피해자들의 고통이 수십 년간 묵인되어온 과정입니다. 피가리 일당이 자행한 범죄 못지않게, 그 범죄를 가능케 한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했습니다. 우선 SCV 조직 내부의 은폐가 극심했습니다. 피가리와 측근들은 피해자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세뇌하여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혹여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있으면 영적 불순이나 불복종으로 몰아세우며 죄책감을 주입했고, 조직을 떠난 후에도 입을 열지 못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가했습니다. 실제로 2010년이 되어서야 SCV 지도부는 피가리를 페루에서 로마로 빼돌렸는데, 이는 피해자들의 문제 제기가 누적되자 취한 늑장 대처였습니다. 그 전까지 피해자들의 호소는 철저히 묵살되거나 조직 내에서 덮여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SCV 수뇌부는 내부 문제를 폭로한 이들을 보복성 법적 조치로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SCV 출신 대주교는 자신과 조직을 비판한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진실을 덮으려 했고, SCV 관련 기업들은 비판적 활동가들에게 터무니없는 소송 공세를 퍼부어 입막음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조직적인 압력은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안기며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로 작동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교회 전체의 방조와 침묵이었습니다. 페루 교회 당국과 가톨릭 지도자들은 초기 제보를 받고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SCV가 한창 세를 넓히던 시절, 보수 성향의 일부 성직자들과 교계 인사들은 오히려 이 단체를 두둔하거나 문제 제기에 귀를 막았습니다. 피해자들의 고발이 본격화된 후에도 페루 교계는 분열되었고, 일부 고위 성직자는 여전히 조직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명한 가톨릭 언론인 오스카 오스테를링 등은 SCV 지도부가 오랜 세월 학대를 은폐해왔으며, 교회 당국자들 역시 모르는 척 외면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SCV 사건의 첫 폭로자 중 한 명인 페드로 살리나스는 "페루의 교회 기관들과 주교들 상당수가 이번 사태에서 눈을 감아버렸다"고 개탄하며, 교황의 노력에 함께하지 않고 외면한 공모자들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 가톨릭 전문가들은 SCV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여러 우익 가톨릭 운동에서 공통적으로 지도자 숭배와 엄격한 규율이 강조되었고, 이런 폐쇄적 구조가 "학대가 발생하고 오래 숨겨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분석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 내 권위주의 문화와 체면치레가 피해자들의 외침을 질식시킨 것입니다.
권력의 성역화가 낳은 지연된 책임 추궁: SCV 사태가 이렇게 오래도록 해결되지 못한 이면에는, 가톨릭 교회 내부의 권력 구조와 성역 의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조직에서 오랜 기간 뿌리내린 폐단 중 하나는, 성직자나 교회 단체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보호 본능입니다. 종교 권력은 흔히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주장하며, 외부의 비판이나 내부 고발을 용납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SCV가 교황청의 인가를 받은 단체였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를 강화했습니다. 바티칸의 공인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지에서 SCV는 일종의 면죄부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교계 내부에서 "교황청이 인정한 단체에 감히 무슨 문제냐"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고, 이는 곧 비판 억제와 자기방어 기제로 작용했습니다.
피가리는 교황청의 총애를 받는 보수 가톨릭 지도자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그는 과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세우며 자신의 정통성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그런 배경 덕분에 피가리는 한동안 페루와 바티칸에서 모두 "법적으로 손댈 수 없는 인물"로 통했습니다. 현지 사법당국은 공소시효의 벽에 막혀 그를 기소하지 못했고, 바티칸 역시 그가 평신도 신분이라는 이유로 교회법상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데 한계를 보였습니다. 2017년 교황청이 피가리에 대해 내린 첫 조치는, 그를 로마에 머물게 하고 SCV와 접촉하지 말라는 사실상의 유배령에 그쳤습니다. 당시 바티칸은 피가리가 고령이고 범죄가 오래전 일이며 최근 단체가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출교나 공적 재판 대신 이런 행정조치로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들은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비호하는 핑계처럼 들렸고, 피해자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SCV 사태 초기, 교황청은 조직을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기회를 주어 스스로 개혁하게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는 교회의 체면과 연관된 판단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가톨릭 추문으로 번지면 교회 권위에 큰 상처가 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가급적이면 조용히 내부 정리에 맡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역 지키기식 접근은 오히려 문제를 키웠고 책임을 지연시켰습니다. 지역 교회 차원에서도 권위 의식과 체면치레는 문제 해결을 가로막았습니다. 페루 교계는 SCV 문제를 자기 식구의 문제로 여겨 쉬쉬하며 덮으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어떤 주교들은 SCV의 보수신학적 입장을 공유했기에 그들을 동지처럼 감싸기도 했습니다. 또한 가톨릭 교회 전반에 만연한 성직자 우위 문화는 평신도 피해자들의 호소를 하찮게 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직자의 말은 신뢰하고 평신도의 말은 의심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피해 호소는 번번이 묵살되기 일쑤였습니다. 설령 문제를 인지하더라도 "교회 스스로 해결하자"는 폐쇄적 논리가 작동하여, 외부에 스캔들이 알려지는 것을 막는 데 급급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방조 속에서, SCV 가해자들은 사실상의 면죄 특권을 누리며 오랜 세월 법망과 교회 징계를 피해갔습니다.
이번 SCV 사태는 종교 단체의 폐쇄적 구조, 그리고 권력의 성역화가 낳을 수 있는 비극적인 결과와 지연된 정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교회의 행보가 신앙적이라기보다는 불법적이고 상업적인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가톨릭 교회가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유사한 죄를 반복해 온 것은, 결국 교황이나 추기경 등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교회를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성적이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이들에게, 일부 종교 단체가 결코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중요한 교훈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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