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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뉴스

부산 형제복지원, ‘한국판 아우슈비츠’ 인권유린과 교계 침묵의 민낯

by 브레드79 2026. 3. 11.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서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원래 고아원으로 시작했으나, 1975년부터 부산시와 계약을 맺고 부랑인을 수용하는 복지시설로 전환되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부랑인 단속이 강화되면서, 형제복지원은 최대 규모의 부랑인 수용소 역할을 했습니다.

운영자인 박인근 원장은 개신교 장로 겸 권사 신분으로, 지역 내에서 복지사업가로도 알려져 있었으나, 시설 내에서는 불법 감금, 강제노역, 폭행, 고문, 성폭력 등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됐습니다. 수용자 약 3,000~4,000명이 아무 죄목 없이 강제로 끌려와 감금됐으며, 군대식 계급체계를 바탕으로 한 내부 조력자들을 동원해 폭력과 노역을 강요당했습니다. 임금 없는 노동으로 형제복지원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으며, 1987년 국회 조사 결과 513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시신은 암매장되거나 유기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성폭력 피해도 심각해, 어린 소년들이 상급 수용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릴 정도의 비극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건은 오랜 기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정부와 시설 운영진의 조직적 은폐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1982년부터 진정을 넣었으나 무고죄로 되돌아왔으며, 1987년 김용원 검사가 현장을 발견해 대규모 수사를 시작했으나 군사정권의 외압으로 수사가 축소·은폐됐습니다. 박 원장은 핵심 책임자 처벌 없이 경미한 횡령 혐의로 짧은 실형을 살고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습니다.

지역 기독교계 역시 사건을 알면서도 은폐에 관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박 원장은 장로 겸 권사로서 지역 유지로 자리매김해 사회적 온정을 받았고, 교계 내에서는 사건이 개인 일탈로 축소됐으며 당시 교계 전체가 침묵하거나 방관했습니다.

2016년 AP통신과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국가가 사건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학대 규모를 축소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파장이 재점화되고 있습니다.

본 사건은 종교적 선의를 앞세운 자선활동이라 해도 감시와 투명성 확보 없이는 극심한 인권침해와 권력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한국 사회와 종교계에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