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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

교황청 침묵 속 벌어진 비극... 이탈리아-아르헨티나 청각장애 아동 성폭력 은폐 사건

by 브레드79 2025. 6. 6.

니콜라 코라디(Nicola Corradi) 목사, 아르만도 고메즈(Armando Gomez), 호라시오 코르바초(Horacio Corbacho) 목사는 루한데쿠요(Lujan de Cuyo)에 있는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 장애인 아동 연구소(Antonio Provolo Institute for Deaf and Hearing Impaired Children)에서 아동을 학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Marcelo Ruiz Mendoza/The Associated Press]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은폐 사건이 가톨릭 교회의 조직적인 성학대 은폐 실태를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진 이 비극은 수십 년간 청각장애 아동들이 성직자들에게 성폭력과 학대를 당했음에도 교회가 이를 조직적으로 숨기려 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비극은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 위치한 프로볼로 농아학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졸업생 67명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학교에서 사제들과 수도사들에게 반복적인 성적 학대와 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교회 내부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자 2009년 집단 폭로에 나섰고, 이 중 14명은 자신들을 학대한 24명의 가해 성직자 명단까지 제출했습니다. 이 명단에는 당시 이탈리아 출신 니콜라 코라디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197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그곳 자매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코라디 신부와 아르헨티나인 호라시오 코르바초 신부 등은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아르헨티나 멘도사의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같은 범죄를 계속 저질렀고, 2016년 말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2019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코라디에게 징역 42, 코르바초에게 징역 45년을 선고하며 이들의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두 대륙에 걸쳐 벌어진 청각장애 아동 대상 성범죄는 오랜 기간 교회의 은폐 속에 계속되었으며, 뒤늦게야 세속 사법 기관의 개입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가톨릭 교회 조직의 조직적인 은폐와 미온적인 대응 정황입니다. 피해자들이 주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하자 그제서야 바티칸이 2010년에 조사를 지시했고, 이탈리아 법관 마리오 산니테가 조사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산니테 조사관은 수개월 간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뒤 대부분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코라디 신부를 지목한 증언만은 의심스럽다며 보고했고, 그 결과 바티칸에 제출된 최종 조사 보고서에서는 피해자들이 지목한 24명의 가해자 중 단 5명에게만 교회 징계가 내려지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코라디 신부는 그 5명의 징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바티칸은 고령의 일부 가해자를 사실상 면죄해주거나,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징계받은 이들도 아이들과 떨어져 기도 속에 지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교회 당국은 많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시켰고, 코라디처럼 해외로 이동한 성직자는 그대로 방치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교회 측 대응은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했습니다. 이탈리아 피해자들은 201410, 교황 프란치스코와 베로나 교구에 공동 서한을 보내 여전히 활동 중인 가해 성직자 14명의 명단을 전달하고, 코라디 신부 등이 아르헨티나에서 계속 사역 중임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에 바티칸은 즉각 답하지 않았습니다. 2년이 지나서야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인 안젤로 베추 대주교가 회신을 보냈고, 교황이 사안을 주목하고 있으며 아동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습니다. 정작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코라디 신부에 대한 아무 경고도 전달되지 않았고, 멘도사 교구는 코라디 신부의 과거를 전혀 모른 채 그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바티칸과 교구 사이에 위험 인물에 대한 정보 공유나 감시 체계가 전무했던 것입니다. 결국 2016년 아르헨티나 경찰이 학교를 급습하여 가해자들을 체포한 이후에야 바티칸은 부랴부랴 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을 거의 하지 않았고, 바티칸은 코라디 신부의 체포에 대해서도 논평을 사양한다며 침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 내부 고발과 경고는 철저히 묵살된 반면, 세속 당국의 개입으로만 사태가 중단되었다는 점에서 교회의 대응은 심각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비참하게 저버렸고, 교황은 외면했으며, 결국 경찰이 대응했다." 이 말은 이 사건의 본질을 가장 잘 요약합니다. 실제로 코라디 신부는 2009년부터 위험 인물로 알려졌지만, 교회의 방치로 거의 10년간 추가 범행을 계속할 수 있었고, 결국 세속의 경찰과 법원이 나서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습니다. 투명한 책임 규명 절차의 결여 등 구조적인 결함이 어우러져 이 같은 비극을 낳은 것입니다. 이 사건은 겉으로는 신뢰와 도덕을 내세우는 거대 조직이 내부적으로는 권위와 이미지 보호를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라는 비판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