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뉴스

교황 칙서부터 기숙학교까지: 가톨릭 식민주의 유산의 비극적 기록

by 브레드79 2025. 5. 17.

가톨릭 교회가 '복음 전파'라는 이름 아래 수 세기에 걸친 식민지 정복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원주민의 인권을 대규모로 침해하고 학살과 문화 파괴에 일조했다는 충격적인 역사가 다시 한번 조명되고 있습니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제국 건설 과정에서, 교황과 가톨릭 성직자들은 영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 때로는 선봉에 서서 토착민의 삶의 터전과 문화를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원주민이 학살당하고 노예화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이러한 가톨릭 식민주의의 어두운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상처와 분노로 남아 있습니다. 잘못된 교회의 쇠퇴를 바라는 이들은 이러한 충격적인 진실을 널리 알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황청은 유럽의 식민 팽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후, 교황 니콜라오 5세는 1452년과 1455년의 칙서를 통해 기독교인이 아닌 '이교도'들의 땅을 정복하고 그 주민들을 노예로 삼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또한 1493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칙서를 반포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을 나누어 차지하도록 조정했습니다. 이처럼 '발견한' 비기독교 땅은 가톨릭 국가가 소유해도 좋다는 교황청의 논리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에게 종교적인 면죄부를 제공했으며, 이는 무력 침탈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습니다.

이른바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은 교황청 칙서들을 통해 제도화되어 국제 관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럽 열강의 군대는 '신앙을 전파한다'는 명분 아래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에 진출하여 토착민의 땅을 무력으로 빼앗고 지배 구조를 세웠습니다. 교황권이 부여한 이 특권 아래, 침략자들은 무력과 십자가를 함께 휘두르며 저항하는 원주민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는 것을 정당화했습니다. 이 원칙은 16세기 중반 공식적으로 폐기되기 전까지 이미 전 세계에 유럽의 식민지 제국이 확장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심지어 미국 대법원은 19세기 판결에서 이 '발견 원칙'을 인용해 원주민이 토지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이 없다는 법리를 세우는 등 그 영향이 근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후, 수천만 명의 토착 주민들이 전쟁, 강제 노동, 그리고 유럽인들이 옮긴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천연두 등의 전염병이 대규모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식민 지배자들의 혹독한 착취와 의도적인 학살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성직자들과 함께 다니며 원주민들에게 개종을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처벌했습니다. 스페인 정복 초기에는 일부 성직자들이 이러한 잔혹한 만행을 말리기는커녕 앞장서서 종교의 이름으로 원주민들을 겁주고 처벌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반면, 일부 양심적인 가톨릭 성직자인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식민자들의 학대를 고발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목소리는 거대한 식민 개척의 흐름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초창기 교황 칙서들은 비기독교인에 대한 노예화를 묵인했기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거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후 교회 자체도 노예 제도를 활용하거나 방관했으며, 일부 수도회는 식민지 농장 경영에 노예 노동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특히 정복자들과 선교사들은 토착민의 고유한 신앙과 전통을 '이교도적'이라 여기고 체계적으로 파괴했으며, 언어와 관습 사용을 금지하는 강압적인 동화 정책을 실시하며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의 정체성을 말살했습니다.

식민주의 시대가 저물어간 뒤에도 교회의 인권 침해는 새로운 형태로 지속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와 20세기 북미 지역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대입니다. 캐나다와 미국 정부는 원주민 동화를 목적으로 아이들을 가족으로부터 강제로 분리하여 기숙학교에 수용했으며, 이러한 학교의 상당수를 가톨릭 교회가 운영했습니다. 18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15만 명에 달하는 원주민 아동이 139개 기숙학교에 보내져 언어와 전통을 금지당한 채 잔혹한 체벌과 신체적, 성적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영양실조와 질병, 그리고 학대로 인해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정확한 수는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않아 영원히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202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위치했던 전직 기숙학교 부지에서 215명의 어린이 유해가 집단 매장된 채 발견되자, 캐나다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캐나다 방문 중 눈물을 흘리며 원주민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악"이라고 표현했습니다[10]. 하지만 사과 외 위로금이나 보상 등 실질적인 책임 이행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함께, 일부 가톨릭 매체의 보도 방식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바티칸 뉴스는 교황의 사죄를 보도하며 눈물과 연민, 선물 제공 등을 언급했지만, 이는 실질적인 책임 이행 없이 이미지 개선에만 집중한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7], [8], [9]. 교황청은 지난 3월, 과거 교황 칙서들에 담긴 '발견의 원칙'이 원주민의 타고난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개념임을 부인하며 잘못을 인정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9].

과거 교회의 식민 개입은 오늘날에도 원주민 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으며,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교황청에 15세기 칙서의 공식 폐지와 토착민 권리 회복을 요구하며, 단순한 사과를 넘어 실질적인 보상과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자로 시성된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 신부의 동상이 2020년 시위대에 의해 철거되는 등 과거 식민 시대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 국가에서는 교회가 과거 취득한 토지와 재산의 환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가톨릭 내부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2019년 아마존 시노드 등에서는 과거 선교 활동이 토착 문화에 남긴 상처를 언급하며 더욱 포용적인 사목 방향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 묵은 상처를 치유하고 과거의 잘못을 온전히 바로잡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교회의 도덕적 권위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충격적인 역사가 널리 알려질수록 가톨릭 교회에 등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